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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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유교는 ‘인(仁)’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맹자는 ‘인’의 실천을 위한 ‘의(義)’의 덕을 내세워 인의(仁義)와 덕치(德治)로서의 왕도론(王道論)을 펼쳤고, 순자는 외면적ㆍ객관적인 ‘예(禮)’에 의해서 수양이 완성된다고 말하며 ‘예’를 강조하였다.
전한(前漢)시대에는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문, 후한(後漢)시대에는 훈고학(訓故學), 당(唐)나라 때에는 정의(正義)의 학, 송(宋)나라 때에는 성리학(性理學:朱子學), 명(明)나라 때는 심학(心學), 청(淸)나라 때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고증학(考證學)으로 나타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의 유교는 삼국시대에 처음으로 전파되어 조선시대에 꽃을 피웠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은 유교의 기초를 확립하였고, 뒤를 이어 김종직이 부흥을 이끌었다. 김종직 사후에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났고, 그 후 사화가 거듭되면서 유학자들은 벼슬을 단념하고 산림에 숨어 학문과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서경덕, 조식, 김인후 등이 그 시기의 대표적 인물이다.
명종ㆍ·선조 때에는 많은 유학자가 배출되어 한국 성리학의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유학자로 이황과 이이를 꼽을 수 있다. 이황은 4단7정(四端七情)의 이기이원론, 이이는 주기설(主氣說)을 확립하였다. 이황을 ‘동방의 주부자(朱夫子)’, 이이를 ‘동방의 성인(聖人)’이라 할 만큼 그들의 학풍은 후대의 학자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수천 년 동안 동양의 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인(仁)’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수신(修身)ㆍ제가(齊家)ㆍ치국(治國)ㆍ평천하(平天下)를 실현한다는 근본이념은 변함이 없었다.

현대사회는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물질적 풍요를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풍요로운 삶의 이면에는 인간 존엄성과 정신가치의 훼손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랐고,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의 대안 가치로 유교가 대두되고 있다. 유교에서는 배움의 중요성도 강조하지만 배움을 통한 실천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실제로 유교문화권의 국가들을 보면 유교의 가르침이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에 묻어남을 알 수 있다. 여타의 사상이나 철학들이 실천의 영역으로 확장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지행합일(知行合一), 훌륭한 사상을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의 일치가 현대사회에서 유교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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